
가끔은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도 그 유래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뜻밖의 이야기에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만두(饅頭)도 바로 그러한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만두는 중국 전국시대부터 먹기 시작한 음식이지만, ‘만두’라는 이름으로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처음 만두의 한자 표기는 ‘蠻頭’였다. 뜻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오랑캐의 머리’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蠻’은 당시 중국 남쪽 지역의 오랑캐로 불렸던 남만(南蠻) 사람들을 지칭했다.
촉나라의 재상이었던 제갈공명이 남만 지역을 정벌하고 돌아오던 중 여수(濾水)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이곳에서 제갈공명의 일행은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를 잠잠케 하려면 남만 지역에서 내려오던 풍습대로 49명의 사람, 즉 남만 오랑캐들을 죽여 그 머리를 제물로 마쳐야 한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이때 제갈공명은 비록 포로라 할지라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밀가루를 빚어 그 안에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넣은 다음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폭풍우는 잠잠해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사람의 머리 모양의 이 만두는 북방으로 전해져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 머리를 모방해서 만들었던 것이니 만두의 크기는 지금보다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크기로 만두를 빚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이후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만두가 전해진 것은 고려 시대 무렵이라고 생각되는데, 충렬왕 5년에 나온 고려가사 <쌍화점(雙花店)>에서 그 첫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 애인과는 처음으로 같이 간 인천차이나타운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자 간 곳은 중국정통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원보(元寶)였다. 이곳을 찾은 큰 이유 중 하나는, 평소 군만두를 가장 잘 내놓는다고 생각하는 강북삼성병원 뒤편의 목란(木蘭)과 군만두 맛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서로 군만두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웠지만, 목란(木蘭)의 경우와 같이 이곳의 군만두도 어느날 문득 매우 당기는 날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란(木蘭)은 가깝게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원보(元寶)는 맘 잡고 가야 하는 거리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찌는데 몇시간 씩이나 걸렸겠구나....란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그 양만큼은
크고 훌륭하고 아름답구나!!
그래서, 당시에는 평범한 날에는 먹을 수 없고,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듯 합니다.
첫 댓글, 감사드립니다.
만두는 찾기가 너무 힘든듯.. 예전 왕십리의 2천원에 5개를 팔았던 만두집이 생각나는군... 흠... 근.. 20년전쯤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