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存在)의 소중함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재(不在)를 경험하는 것이다. 부재의 대상이 평소 익숙한 것일수록, 부재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일수록 그 효과는 극명해진다. 어제, 왼쪽 엄지발가락에 한 간단한 수술 때문에 오늘은 거의 엄지발가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준(準)부재의 수준을 경험한 것이다.
걸음을 걸을 때 엄지발가락은 체중을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옮겨주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한쪽 지렛대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보행은 자연스레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이어지고 부가적인 에너지 소모를 유발한다. 덕분에 오늘, 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본의 아니게 뒤뚱거렸으며(애인은 이 모습을 ‘귀엽다’라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평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부재의 상황을 메우거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경험은, 도움의 대상에 대한 호의나 애착을 갖게 한다. 수술한 부위를 치료받고자 병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때와 달리 아득하게 멀리 서 있게만 느껴지는 본관 건물은 묘한 좌절감에 휩싸이게 했다. 심호흡하고 걸음을 떼려는 찰나, 부드럽게 유턴하여 내 앞에 들어오는 구세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동 셔틀카였다.
평소 걸음으로는 채 2~3분도 되지 않는 병원 정문과 본관 사이를 오가는 셔틀카인지라 볼 때마다 그 효용성을 의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그 셔틀카를 구세주로 모시는 역전이 일어났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가득 짓고는, 마치 천국에 가는 구원열차를 탄 듯 만족스럽게 전동 셔틀카를 타고 성공적으로 본관까지 갔음은 물론이다.
왠지 오버스러운 서비스가 아닐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전동 셔틀카에 대한 다소 부정적 시각은 불과 1분가량의 경험을 통해 호의와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나의 부재 상황에 극적인 도움을 준 대상이기에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급기야 애인에게 이런 말을 건넴으로써 전동 셔틀카에 대한 강한 호의와 애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런데 있잖아. 그 전동 셔틀카를 도입하자고 처음에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있었을 거 아니야. 그 사람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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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