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rik's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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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통로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천정과 바닥 그리고 기둥이 모여 풍경을 둘러싸는 프레임을 만들어 준다. © 2009 ibrik


44년 동안 닫혀 있던 경회루(慶會樓)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곤 설레는 마음으로 다녀왔던 적이 있다. 경회루는 밖에 서서 구경하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을 구경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그런데 늘 멀리 떨어진 밖에서 경회루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경복궁을 갈 때마다 느끼는 큰 갈증 중 하나였다. 2005년 6월의 어느 날, 그 갈증을 드디어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경회루에 올라가 보겠느냐는 생각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갔었다. 옛 궁궐 건물의 안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옛날 렌즈로 찍는 게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라이카 Summaron 35mm F3.5 렌즈를 마운트한 35mm 카메라와 6 X 6 중형 카메라인 Rolleiflex 3.5 F를 함께 들고 갔었다. Rolleiflex를 들고 간 것은 좀처럼 자주 보기 어려운 풍경을 좀 더 큰 판형의 필름에 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당시 사용하던 Rolleiflex에 장착된 렌즈는 Planar 75mm F3.5였다.

 

누마루에 올라서서 바라본 풍경은 기대 이상이었다. 조선시대의 왕들이 왜 이곳에서 연회를 즐겼는지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풍경이었다. 북쪽으로는 백악산이, 남쪽으로는 멀리 광화문이, 동쪽으로는 입체적으로 겹쳐 있는 경복궁 건물들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잔잔한 연못과 함께 그 배경을 이루는 인왕산이 펼쳐져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장식된 낙양각은 이와 같은 풍경들을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케 하는 훌륭한 프레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날 두 대의 카메라로 정신없이 필름을 갈아 끼우며 이러한 풍경들을 담았지만,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크다고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樓)는 기둥과 바닥 그리고 지붕만 있을 뿐 벽과 문이 없는 건축물이다. 사방을 완전하게 트이게 하여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분리를 최소화시킨 건축물인 것이다. 이 때문에 비록 사람은 인공적인 건축물 안에 있지만, 건축물을 둘러싼 자연 풍경과의 분리를 최소화되므로 마치 사람이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자연을 존중하고 닮으려는 한국인의 자연관과 건축관이 누(樓) 속에 선명하게 녹아 있는 것이다.

 

세종로 방향에서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맞은 편 뒷길로 넘어갈 수 있는 널따란 통로가 하나 나온다. 어제는 통로 한가운데 의자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통로를 이루는 바닥과 천정 그리고 기둥이 바깥 풍경을 담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었다. 이 프레임 속에 펼쳐진 바깥 경치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4년 전 경회루에 올라 보았던 그 감격스런 풍경이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안타까우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경회루에서 보았던 프레임 속 배경이 자연 그대로의 산이었다면, 세종문화회관에서 마주친 프레임 속 배경은 인공적인 주변 건물들이라는 점이다.



 

+ 함께 읽을 만한 책: 류경수,『우리 옛건축에 담긴 표정들 』, 대원사, 1998.

by ibrik | 2009/07/16 09:14 | diary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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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schoi at 2009/07/16 16:17
풍경 좋은 곳에 전면이 유리인 방이 있는 집을 짓고 살고 싶어요. @.@;
Commented by ibrik at 2009/07/17 22:25
신혼살림을 차린 지금 사는 곳도 커다란 전면 유리창은 없지만, 풍경 좋은 곳이니 그걸로 위안을! :)
Commented by mark at 2009/08/12 15:22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요. ^^
Commented by ibrik at 2009/08/13 04:45
가끔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들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데 참 많은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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