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갑의 가장 왼쪽 포켓부터 살펴본다. 가지런히 카드들이 꽂혀 있다. 모두 적립금 카드들이다. 교보문고 북클럽 카드, 영풍문고 북클럽 카드, OK 캐쉬백 카드, 해피 포인트 카드, GS&포인트 카드 --- 두 서점의 적립금 카드가 매우 낡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비교적 서점에서 책을 많이 사는 듯하다. 해피 포인트 카드도 마그네틱 선을 보니 많은 줄이 가 있는데 빵을 주로 파리바게뜨나 파리크라상에서 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종종 던킨도너츠나 베스킨라빈스도 이용할 듯하고. 왼쪽 포켓에 있던 적립 카드 중 GS&포인트 카드는 가장 새것인데, 아마 최근에 만들었을 듯하다. 그래서 적립금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번에 오른쪽 포켓을 살펴본다. 우선 슈퍼맨 마크가 그려져 있는 하얀색 LG 텔레콤 멤버쉽 카드가 가장 먼저 잡힌다. 이 카드 역시 굉장히 새것인데, 이 사람은 아마 LG 텔레콤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두 번째 칸에는 CGV VIP 카드가 꽂혀 있다. 영화는 주로 CGV에서 보는 듯하고, VIP 회원인 것으로 보아 일 년에 영화를 꽤 보는 사람인 듯하다. 그다음 칸에는 롯데 멤버십 카드가 있는데, 발급된 지는 꽤 지난 것 같으나 마그네틱 선이 비교적 깨끗한 것을 고려한다면 롯데 백화점 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 포켓의 제일 마지막 아래 칸에는 두 장의 카드가 함께 꽂혀 있는데 카페 뎀셀브즈 회원 카드와 K 스포츠센터 회원 카드이다. 카페 뎀셀브즈 회원 카드는 상당히 낡아 있는데, 이 카페를 자주 이용하기 때문인듯싶다. K 스포츠센터 회원 카드는 그리 낡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운동을 시작한 지 별로 안 되었거나, 오래되었어도 자주 운동을 하러 가지 않는 유형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갑의 안쪽 날개 부분에 있는 포켓을 보니 주민등록증과 신분증이 들어 있다. 주민등록증을 보니 이 사람의 성별, 출생일, 주소 그리고 모습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지갑의 주인이 남자라는 것은 지갑의 모양을 보고 처음부터 금방 알아채고 있었다. 신분증을 보니 현재 이 남자의 소속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신분증의 사진을 대조하면 이 남자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묘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날개의 반대쪽,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부분을 보니 어떤 여자의 증명사진이 두 장 들어 있다. 다행히(?) 두 사진 속 주인공은 동일인물이고, 서로 다른 연도에 촬영한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른 얼굴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이 남자의 연인일 것이다. 이 남자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도저히 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이 있던 주머니 속에는 두 장의 인터넷 뱅킹용 은행보안카드가 있다. 하나는 W은행, 또 다른 하나는 K은행용이다. K은행 것보다 W은행 것이 현저하게 낡아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이 남자의 주거래 은행이 W은행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지갑 안쪽을 살펴볼 차례다. 지갑의 안쪽은 두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두 칸 중 제일 안쪽을 들여다보니, 무려 11군데의 서로 다른 카페 스탬프 적립 카드들이 들어 있다. 이 남자는 필시 이 카페 저 카페를 돌아다니면 커피 맛을 비교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남자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같은 칸에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영수증 몇 장이 반듯하게 접혀서 들어 있다. 지난 7월 18일 자 영수증들이다. 우선, 이 남자는 지난주 토요일 오후 3시 10분에 무인양품 롯데 영플라자점에서 프레임 매트를 한 개 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밤 10시 43분에 주소지 근처에 있는 뚜레쥬르에서 생크림 식빵을 하나 샀으며, 약 16분 뒤에는 홈플러스에 들러 다섯 가지 상품을 쇼핑하여 계산을 완료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남자는 왜 해피 포인트가 적립되는 파리바게뜨나 파리크라상에서 식빵을 안 사고 뜬금없이 뚜레주르에서 식빵을 샀을까?
궁금증은 궁금증대로 남겨두고, 이제 가장 중요한, 대망의 현금이 들어 있는 칸을 들여다볼 차례이다. 두근두근 기대를 하며 설레는 맘으로 지갑을 벌려본 결과,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현금이 들어 있는 칸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천 원짜리 지폐 두 장 그리고 올해 12월 31일까지가 유효기간인 스타벅스 음료쿠폰이 한 장 들어 있을 뿐이다. 사실 누군가의 지갑을 살펴볼 때 가장 설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생각보다 수확이 그리 크지 못하니 지금까지 지갑을 뒤져본 것에 대한 서운함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남자의 자신감은 자고로 빵빵한 지갑의 두께에서 나온다고 했거늘, 이렇게 돈을 적게 가지고 다녀서야!
이렇게 지갑을 다 살펴보고는 지갑을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 고민을 해야 양심있는 사람의 합당한 처신이겠지만, 난 그런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지갑은 오늘 아침 급하게 나가느라 책상 위에 두고 갔던 나의 지갑이기 때문이다.
오늘, 지갑을 가지고 나가지 않아 상당히 불편하고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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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도 감사합니다.
첫 댓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사람들 있을 땐 주인을, 없을땐 돈을.. -.-;;
첫 댓글, 감사합니다.
...는 농담이고요^^ 일단 주인부터 보고 금액을 확인하죠~
첫 댓글, 감사합니다.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이 남자의 연인일 것이다. 이 남자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도저히 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거 자신있으신가요? =)
재밌네요. 지갑 탐구! 글도 재밌지만 성격도 꼼꼼하신 것 같아요.
아, 링크 신고합니다 :)
첫 댓글과 링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