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rik's 일기
about  *  diary  *  note  *  meditation

애인에게서 올 초에 선물 받은 지갑. 한 사람의 지갑 속에는 그 사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단서가 들어 있다. © 2009 ibrik


지갑의 가장 왼쪽 포켓부터 살펴본다. 가지런히 카드들이 꽂혀 있다. 모두 적립금 카드들이다. 교보문고 북클럽 카드, 영풍문고 북클럽 카드, OK 캐쉬백 카드, 해피 포인트 카드, GS&포인트 카드 --- 두 서점의 적립금 카드가 매우 낡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비교적 서점에서 책을 많이 사는 듯하다. 해피 포인트 카드도 마그네틱 선을 보니 많은 줄이 가 있는데 빵을 주로 파리바게뜨나 파리크라상에서 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종종 던킨도너츠나 베스킨라빈스도 이용할 듯하고. 왼쪽 포켓에 있던 적립 카드 중 GS&포인트 카드는 가장 새것인데, 아마 최근에 만들었을 듯하다. 그래서 적립금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번에 오른쪽 포켓을 살펴본다. 우선 슈퍼맨 마크가 그려져 있는 하얀색 LG 텔레콤 멤버쉽 카드가 가장 먼저 잡힌다. 이 카드 역시 굉장히 새것인데, 이 사람은 아마 LG 텔레콤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두 번째 칸에는 CGV VIP 카드가 꽂혀 있다. 영화는 주로 CGV에서 보는 듯하고, VIP 회원인 것으로 보아 일 년에 영화를 꽤 보는 사람인 듯하다. 그다음 칸에는 롯데 멤버십 카드가 있는데, 발급된 지는 꽤 지난 것 같으나 마그네틱 선이 비교적 깨끗한 것을 고려한다면 롯데 백화점 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 포켓의 제일 마지막 아래 칸에는 두 장의 카드가 함께 꽂혀 있는데 카페 뎀셀브즈 회원 카드와 K 스포츠센터 회원 카드이다. 카페 뎀셀브즈 회원 카드는 상당히 낡아 있는데, 이 카페를 자주 이용하기 때문인듯싶다. K 스포츠센터 회원 카드는 그리 낡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운동을 시작한 지 별로 안 되었거나, 오래되었어도 자주 운동을 하러 가지 않는 유형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갑의 안쪽 날개 부분에 있는 포켓을 보니 주민등록증과 신분증이 들어 있다. 주민등록증을 보니 이 사람의 성별, 출생일, 주소 그리고 모습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지갑의 주인이 남자라는 것은 지갑의 모양을 보고 처음부터 금방 알아채고 있었다. 신분증을 보니 현재 이 남자의 소속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신분증의 사진을 대조하면 이 남자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묘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날개의 반대쪽,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부분을 보니 어떤 여자의 증명사진이 두 장 들어 있다. 다행히(?) 두 사진 속 주인공은 동일인물이고, 서로 다른 연도에 촬영한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른 얼굴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이 남자의 연인일 것이다. 이 남자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도저히 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이 있던 주머니 속에는 두 장의 인터넷 뱅킹용 은행보안카드가 있다. 하나는 W은행, 또 다른 하나는 K은행용이다. K은행 것보다 W은행 것이 현저하게 낡아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이 남자의 주거래 은행이 W은행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지갑 안쪽을 살펴볼 차례다. 지갑의 안쪽은 두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두 칸 중 제일 안쪽을 들여다보니, 무려 11군데의 서로 다른 카페 스탬프 적립 카드들이 들어 있다. 이 남자는 필시 이 카페 저 카페를 돌아다니면 커피 맛을 비교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남자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같은 칸에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영수증 몇 장이 반듯하게 접혀서 들어 있다. 지난 7월 18일 자 영수증들이다. 우선, 이 남자는 지난주 토요일 오후 3시 10분에 무인양품 롯데 영플라자점에서 프레임 매트를 한 개 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밤 10시 43분에 주소지 근처에 있는 뚜레쥬르에서 생크림 식빵을 하나 샀으며, 약 16분 뒤에는 홈플러스에 들러 다섯 가지 상품을 쇼핑하여 계산을 완료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남자는 왜 해피 포인트가 적립되는 파리바게뜨나 파리크라상에서 식빵을 안 사고 뜬금없이 뚜레주르에서 식빵을 샀을까? 

궁금증은 궁금증대로 남겨두고, 이제 가장 중요한, 대망의 현금이 들어 있는 칸을 들여다볼 차례이다. 두근두근 기대를 하며 설레는 맘으로 지갑을 벌려본 결과,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현금이 들어 있는 칸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천 원짜리 지폐 두 장 그리고 올해 12월 31일까지가 유효기간인 스타벅스 음료쿠폰이 한 장 들어 있을 뿐이다. 사실 누군가의 지갑을 살펴볼 때 가장 설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생각보다 수확이 그리 크지 못하니 지금까지 지갑을 뒤져본 것에 대한 서운함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남자의 자신감은 자고로 빵빵한 지갑의 두께에서 나온다고 했거늘, 이렇게 돈을 적게 가지고 다녀서야!

이렇게 지갑을 다 살펴보고는 지갑을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 고민을 해야 양심있는 사람의 합당한 처신이겠지만, 난 그런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지갑은 오늘 아침 급하게 나가느라 책상 위에 두고 갔던 나의 지갑이기 때문이다.

오늘, 지갑을 가지고 나가지 않아 상당히 불편하고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글을 올리고 나서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보통 지갑을 줍게 되면 사람들은 지갑의 주인이 누군지를 먼저 볼까, 지갑 속에 얼마가 들었을지를 먼저 볼까?

by ibrik | 2009/07/20 23:51 | diary | 트랙백 | 덧글(16)
트랙백 주소 : http://ibrik.kr/tb/505095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Eriz at 2009/07/21 13:30
금액 먼저 보고 그다음에 주인을 봅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09
솔직히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저도 그랬을 듯합니다. :)
첫 댓글도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07/21 17:47
먼저 주인을 보고, 그 다음에 뭐 '돈 될만한 거' 없나 하고 뒤져 봅니다...... ㅋㅋ ;;;;;;;;;;;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11
요즘은 현금도 현금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교환 수단도 많으니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네요.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uha at 2009/07/21 19:30
주인을 먼저 봅니다 :) 그런데 연락처 같은건 안 써있으니까, 찾아주기 힘들어서 보통 우체통에 넣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13
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댓글이군요! :)
Commented by seraphina at 2009/07/22 01:42
지갑을 살펴보는 요런거.. 참 잼있네요~~^^

그리고 전.. 사람들 있을 땐 주인을, 없을땐 돈을.. -.-;;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14
seraphina님도 언제 시간 나실 때, 이런 방법으로 지갑을 묘사해 보세요. 내가 지갑 속에 이런 것들을 넣고 다니는구나 새삼스레 돌아보게 된답니다.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홍돈 at 2009/07/22 09:51
저는 애인의 유무를 먼저 봅니다.
...는 농담이고요^^ 일단 주인부터 보고 금액을 확인하죠~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17
애인이 있는 사람의 지갑이 돌려받을 확률이 높을까요, 아니면 애인이 없는 사람이 지갑을 돌려받을 확률이 높을까요? 홍돈님의 댓글을 읽다가 엉뚱하게 생각난 궁금증입니다.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홍돈 at 2009/07/22 10:03
아참..링크 신고했습니다. 재미난 글 많이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17
링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hschoi at 2009/07/22 11:41
음...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이 남자의 연인일 것이다. 이 남자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도저히 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거 자신있으신가요? =)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3 02:19
헉, 내가 아무리 빨리 결혼을 해서 딸을 낳아도 힘들지! :)
Commented by spica at 2009/07/27 12:41
호오... 댓글들을 보니 '민증이랑 운전면허 사진부터 바꿔야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재밌네요. 지갑 탐구! 글도 재밌지만 성격도 꼼꼼하신 것 같아요.
아, 링크 신고합니다 :)
Commented by ibrik at 2009/07/28 00:25
가끔은 익숙한 소지품을 자세히 뜯어보는 것도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spica님도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지갑을 탐구하신 다음 포스팅을 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첫 댓글과 링크 감사합니다.

:         :

:

비공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