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rik's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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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노량진 역 개찰구 옆에 설치된 옥외 광고. 한동안 이 광고는 숙제와도 같았다. © 2009 ibrik


광고에서 메시지를 드러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있다. 명시적인 방법과 암시적인 방법이다. 보통 명시적인 방법은 언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암시적인 방법은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 언어와 이미지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사용할 수도 있다.

말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의 경우, 수용자가 직접 광고 해석 작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을 제공한다. 즉 명시적인 텍스트가 없는 광고를 보는 과정에서 수용자는 그 광고를 어떻게 읽을까 고민하게 되고, 이러한 이미지 독해 과정을 통해 광고는 점점 수용자의 신경계 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물론, 언어적인 텍스트가 배제된 채 시각적 은유만으로 구성된 광고는 수용자의 해석 능력에 따라 의도한 메시지의 폭과 깊이가 결정된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 극단적인 경우, 광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 하나도 파악 못 하는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광고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해 연구했던 캐플란(Stuart Kaplan)은 대중 잡지에 사용된 시각적 은유 광고의 24%가량이 언어적인 텍스트가 포함되어야지만 비로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환승을 하려고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개찰구를 지날 때마다 보게 되는 ‘현대캐피탈’의 한 옥외광고도 시각적 은유만으로 구성된 광고였다. 커다란 하얀 배경 양쪽 모서리에 ‘Hyundai Capital’ 로고와 기아자동차의 ’쏘울‘을 병치시켜놓은 이 광고는,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처음 본 순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넓은 공간 속 한쪽 구석에 놓인 쏘울을 보고 연상된 것이라곤 “Think Small"이란 문구로 유명한 폭스바겐 비틀(Beetle) 광고가 유일했고, 이는 이 광고의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치 숙제와 같았던 이 광고가 이해된 순간은 바로 어제였다. 역시 같은 역사 내에 있던 현대캐피탈의 또 다른 광고가 결정적 힌트였다. 이 광고 역시 앞의 광고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림 하나만이 틀릴 뿐이었다.

같은 역사 내에 설치된 광고. 이 광고는 앞의 광고를 해석하는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 2009 ibrik

 

달라진 것은 ‘자동차’에서 ‘집’으로 그림이 바뀐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 다른 광고를 보는 순간, ‘집’과 한쪽 구석에 있는 ‘Hyundai Capital’ 로고 사이의 시각적 인과 관계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Hyundai Capital에서 ‘대출’을 받아 당신은 ‘집’을 살 수 있다.”라는 것이 광고 속에 내포된 메시지였다. 이러한 시각적 인과 관계를 그대로 앞서 보았던 첫 번째 광고에 적용했더니, 애매모호했던 메시지가 명확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앞의 광고는 바로 현대캐피탈의 오토플랜(Autoplan; 현대캐피탈의 자동차 할부 프로그램의 상품명)과 자동차 리스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였던 것이다.

한동안 고민케 했던 광고의 암호를 풀고 나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하필이면 왜 ‘쏘울’의 이미지를 사용했을까, 좀 더 고급 모델이나 수입 차량을 그 자리에 놓았다면 금방 자동차 관련 금융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었다.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말처럼 광고란 ‘약속이되, 과장된 약속’이므로 이왕이면 고급 수입차와 현대캐피탈을 연관시켜놓는 것이 더 확실한 광고 효과와 함께 이를 빠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아쉬움이 있지만, 현대캐피탈의 이 광고는 실패작이 아님이 분명하다. 단지 두 개의 이미지가 병치 된 광고를 통해, 한동안 이 광고에 주의를 집중시켰으며, 해석을 시도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장황한 글을 쓰도록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현대캐피탈의 오포플랜, 리스 프로그램’ 광고는 내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었음을 물론이다.



+ 함께 읽을 만한 책: 폴 메리시스,『설득 이미지』, 강태완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구체적 언어로 표현했을 때 사회적으로 부담스러운 내용이라도 간접적 이미지로 표현하게 되면 이러한 부담감을 교묘히 피할 수 있고, 오히려 광고 효과를 부각시킬 수 있다. 따라서, 그 많은 자동차 중에서 ‘쏘울’을 사용한 의도는 이렇게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아 자동차의 쏘울은 현금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이 주 목표가 되는 차야. 그런데 지금과 같은 어려운 경제 위기 속에서 자동차가 갖고 싶다고 해서 할부 프로그램을 통해 쏘울을 사게 되면 자칫 절제 없는 소비를 하는 젊은이로 비칠지 몰라. 현대캐피탈로서도 자동차 할부를 이용해서 차를 사라고 직접적으로 호소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좀 부담스러울 때이고. 그래서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설득하고 있는지 몰라. ‘젊은 양반들, 쏘울과 같이 크지 않은 자동차도 우리 현대캐피탈을 이용하면 당장 현금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아요.’라고”.


by ibrik | 2009/08/04 00:06 | diary | 트랙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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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ibrik's 일기 at 2009/08/11 01:44

제목 : 지하철 옥외 광고, 여전히 남는 아쉬움
지하철 9호선 노량진 역 개찰구 옆에 설치된 옥외 광고. 지난번 것과 다른 점은 교체된 자동차 이미지, 새로운 삽입된 문구였다. © 2009 ibrik 어제,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개찰구를 지나다 반가운 광고를 봤다. 바로 지난번 보았던 광고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한동안 주의 깊게 보고 다닌 광고인지라, 새롭게 바뀐 광고를 보고는 한눈에 무엇이 바뀌었는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새로 바뀐 광고는 지난번의 그것보다 한결 더 나은 해석의 도구......more

Commented by 원똘 at 2009/08/04 01:04
혹시 어느 대행사에서 제작했는지 알수 있을까요?
기본 아이디어는 괜찮은것 같은데, ibrik남 말씀처럼 자동차의 이미지도 그렇고 집도 좀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리고 저 여백은... 글쎼요.. 더이상 뭔가 집어 넣으면 안될것 같기는 한데 왠지 뭔가 빠진듯 하군요.
과연 대각선 대립구조의 이미지 배열 만으로 두 이미지의 연관성을 찾기는 조금 힘들어 보이는듯 싶구요. ^^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24
안타깝게도 저는 관련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지하철 9호선의 광고사업자가 동아일보라고 하니, 동아일보 쪽에 문의해 보시거나 현대카드·캐피탈에 문의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8월 5일 자 신문을 보니 이번 광고의 주제가 ‘비움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이 주제와 더불어 시간에 따라 점차 완성되어가는 광고 형식도 보여준다고 하니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04 01:06
어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시는지 블로그에서 얘기하신 적이 있던가요? 나중에 흑백처리를 하시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흑백으로 찍으시는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2:52
사진을 찍는 데 사용한 카메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올리는 사진 중 ‘사물’을 찍은 것은 ’삼성 VLUU NV7 OPS’를 사용했으며, 그 이외의 모든 사진은 ‘LG LH-2300W(일명 아르고폰)’ 휴대전화의 내장 카메라를 이용해서 찍은 것들입니다. 촬영은 컬러로 했으며, 파일을 흑백으로 변환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 참고로 위의 사진도 휴대전화 내장 카메라로 찍은 사진입니다.
Commented by bella at 2009/08/04 09:28
아하,상대적으로 검소해;;보이는 이미지로, 내포된 의미를 알고서도 이 상황에 저런 광고라니;;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교묘한 마케팅이군요. How clever.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12
그래서 스티븐 리콕(Stephen Leacock) 같은 사람은 광고를 ‘돈을 뜯어내는 데에 필요한 시간 동안만 인간의 지성을 붙잡아두는 과학’이라고 표현했답니다.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yuRing at 2009/08/04 13:06
어찌보면 직관적일 수도 있는 광고같아요. 하지만 여백을 많이 두고 두 가지 상징물들을 작게 배치함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 것 같네요 :)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14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주의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잘 활용한 듯합니다.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구호선 at 2009/08/04 14:01
핫.. 9호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못하겠지만.. 재밌는 포스팅 링크 담아갑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16
링크 감사합니다. 닉네임에 링크된 사이트를 방문해 보았는데, 9호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곳이군요. 트위터와 비슷한 형식인 듯한데, 서비스 주체가 어디인지 궁금해지네요.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08/04 15: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32
부탁하신 내용에 대해 답글 달아놓았습니다. :)
Commented by hschoi at 2009/08/04 18:22
ㅎㅎ 꽤나 머리를 싸매고 몇번이나 수정안을 작업했을 그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듯 합니다.
(그나저나 오즈는 좋지만 아르고의 한글입력은 좀 힘드네요)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17
아르고에서 한글 입력, 익숙해지면 나름 빨라진다. :)
Commented by lemon at 2009/08/04 19:35
국회의사당 역에서 현대캐피탈의 광고를 봤었는데,
거기에는 '현란하고 빡빡한 광고에 지친 여러분을 위해 좀 비웠습니다.'라는 내용의 카피가 연작중 하나인가에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19
이번 광고 프로젝트의 의도를 국회의사당역에 남겨놓았었군요! 8월 5일 자 신문을 보니, ‘비움의 미학’이란 주제로 광고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
첫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mark at 2009/08/05 22:20
광고/선전 하는 것을 보면 한정된 지면에 잠재고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달하려고 지면은 빈틈이 없이 갈겨댑니다.
이런 광고/선전은 광고를 보는 사람들의 눈을 병들게 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런 광고가 더 감사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 깊게 인상적일 수도 있을 거구요.
Commented by ibrik at 2009/08/06 01:28
메시지 과잉의 시대가 주는 아픔에 정말 공감을 합니다. 어떤 광고는 정말 메시지 전달의 수준을 넘어 메시지를 강요하고 그것도 모자라 세뇌까지 시키는 경우가 있는 것을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잠시라도 광고 수용자가 쉼을 느낄 수 있는 광고를 기획했다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차원의 사회적 배려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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