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울(Paul)에게 로마는 궁극의 목적지였다. 그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로마서)는 로마를 향한 열정으로 시작하고, 로마 방문을 향한 갈망으로 마무리된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담은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는데, 이 기록은 사도행전 전체 내용의 삼분의 일가량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로마행 속에는 지중해의 한 섬이 등장한다. 사도 바울을 태운 배가 태풍을 만나 난파되고 우여곡절 끝에 한 육지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육지가 바로 지중해 중심에 있는 한 섬이었다. 낯선 섬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신으로 추앙을 받는 엉뚱한 일을 겪게 된다. 가까스로 섬의 해안가로 헤엄쳐 온 일행이 때마침 내린 비 때문에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그 섬의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 사건 때문이었다.
섬에 상륙하자마자 이렇게 신으로 오인을 받기도 한 사도 바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섬에서 다시 로마로 향하기 전까지 무려 석 달 동안 지내게 된다. 신약 성서 사도행전 28장에 등장하는 이곳은 지중해 어딘가에 있는 막연한 섬이 아니라 지금도 가 볼 수 있는 곳인데,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남쪽 93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작은 섬나라 ‘몰타(Malta)’이다.
어제, 커피 필터가 떨어져 부엌 찬장을 뒤지는 도중 낯선 상표의 필터를 발견했다. 상표가 인쇄된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서야 낯선 상표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종이 하단에 적혀 있는 ‘Malta’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일전에 동생이 몰타에서 몇 개월 동안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귀국하면서 함께 딸려온 필터였던 것이다. 약 1950년 전, 사도 바울이 석 달 동안 머물렀던 그 섬에서 건너온 커피 필터라니! 상표가 인쇄된 종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왠지 저 솜브레로(sombrero)를 쓴 사람을 대신해서 성경책을 든 사도 바울이 그려져 있어도 그럴싸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매년 2월 10일, 몰타에서는 ‘성 바울 난파 축전(The Feast of St. Paul's Shipwreck)’이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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