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rik's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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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3일
사물의 기이한 용도

빅(BIC)사의 라운드 스틱(round stic) 볼펜. 어느 볼펜보다도 실용성이 극대화된 제품이다. © 2010 ibrik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낸 것은 대략 8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다음 날 있을 회의 때문에 학교에서 밤을 새우고 있었는데, 문득 학교에는 당연히 있을 리 없는 ‘그것’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렸고, 애써 외면하며 참으려고 노력하던 끝에 결국 책상 서랍들을 열어가며 ‘그것’의 대용품으로 쓸만한 것이 없는지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그것’의 대용품으로 가장 좋은 자격을 갖춘 도구가 발견된 곳은 필기구를 모아두던 넓고 얇은 서랍의 가장 안쪽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볼펜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 볼펜은 극대화된 경제성이 저절로 느껴지는 디자인과 재질을 갖추고 있었는데, 종이에 쓰이는 느낌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책상 서랍 구석 어딘가에 버려두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존재감 없이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던 이 볼펜, 정확히 말하자면 이 볼펜의 ‘뚜껑’은 ‘그것’의 훌륭한 대용품으로 빛을 발했고, 이 날 이후 이 볼펜은 ‘그것’의 훌륭한 대용품이 되어준다는 이유만으로 책상 서랍의 가장 앞쪽에 놓이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8년이 지난 지금, 이 볼펜은 오히려 ‘그것’의 위치를 대치해 버렸다. 이제는 ‘그것’이 쓸 일이 있을 때 당연히 ‘그것’ 대신 이 볼펜, 다시 한번 정확히 말하자면 이 볼펜의 ‘뚜껑’을 찾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Google)에서 이 볼펜의 이름과 ‘그것’을 함께 검색어로 묶어 찾아봤는데, ‘그것’의 대용품으로 이 볼펜을 이용한 사례는 한 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제품의 용도는 설계자의 의도에 상관없이 사용자에 의해서도 충분히 결정될 수 있다. 이 볼펜이 바로 증거 중 하나다.



by ibrik | 2010/02/03 18:02 | diary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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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전창묵 at 2010/02/03 19:03
그것은 혹시 “귀이개” 인가요?
Commented by ibrik at 2010/02/08 19:45
창묵님, 너무 쉽게 맞추셨습니다. ^^;

볼펜 뚜껑이 검은색인지라, 귀이개로 사용하고 나면 더더욱 선명한 결과물(?)을 볼 수 있는 점이 묘한 끌림을 더해주는 듯합니다. ^^;
Commented by panicrules at 2010/02/04 01:18
귀이개라면 왠지 그 끝이 너무 큰 거 아닌가요? ㅋ ^^
그런데 다른 건 생각이 안나네요.. ㅎㅎㅎ
귀이개 한표~
Commented by ibrik at 2010/02/08 19:46
깊이 넣을 때는 귀를 다치게 하는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겉 부분에 살살 사용할 때는 훌륭하게 그 역할을 소화해 낸답니다. :)
Commented by Hschoi at 2010/02/04 09:20
음. 블로그 주인의 성향을 미루어 볼 때 귀가 아닌 코에 사용했을꺼라 확신합니다!! =)
Commented by ibrik at 2010/02/08 19:47
코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얇은 느낌이. :)
Commented by Levin at 2010/02/04 17:11
효자손 대신은 아닐런지...
Commented by ibrik at 2010/02/08 19:49
효자손 대용으로 쓰려면 볼펜 뚜껑과 볼펜 대를 함께 결합해서 사용하는 것을 더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

간혹 등이 가려울 때, 볼펜을 효자손 대용으로 사용하는 때도 있답니다.
Commented by JK at 2010/02/06 22:00
십자 드라이버의 용도인가?
Commented by ibrik at 2010/02/08 19:50
볼펜 뚜껑의 일자 부분이 적당하게 맞는 경우라면 그것도 하나의 응용법일 듯. :)
Commented at 2010/02/07 21: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ibrik at 2010/02/08 19:51
좋은 소식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씀하신 것을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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